나의 이야기

명동 주교좌성당에서 절두산 순교성지까지 도보순례(3)

엉클 필 2012. 3. 12. 16:49

 

성심여고 교문에서 바라 본 옛 용산신학교 성당 (코스트 신부가 명동성당에 이어 설계 함,)

 

옛 용산신학교 성당은 당고개 성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안내 책자를 보아도 쉽게 찾으리라 여겼다.

하지만 당고개 성지를 나와 골목길이 많은 관계로 어느 길을 선택하여야 할지 갈팡질팡 하였다.

다시금 묵주를 꺼내 들어 묵주기도를 하며 걷는다.

무조건  원효대교를 향하여 걷는다. 점점 원효대교 초입에 다다르는데 표지판은 안보인다.

옛 용산신학교 성당은 물론 성심여고 표지판도 보이지 않는다.

"주님! 저를 바른 길로 인도하여 주소서!" 라고 기도를 한다.

비는 많이 줄었는데 주변에 오가는 사람을 찾기가 어렵다. 차는 씽씽 잘도 달려들 간다.

'이제 부터는 성심여고를 먼저 가자.'하며 "성심여고가 어디입니까?" 마침 지나가는 분에게 여쭌다.

가까운 곳에서 우측으로 방향을 잡으면 된다고 알려 주신다. 주님의 평화가 그분에게 있기를~~~~.

일러준 길로 5~6분 걸어 가니 성심여중,고 교문이 보인다.  교문앞에 이르러 옛 용산신학교 성당을

찾으려니 보이지 않는다. 주변을 둘러 봐도 용산신학교 성당이 있을 만한 공간이 보이지 않는다.

교문 수위실 창문을 두드리며 "옛 용산신학교 성당이 어디에 있습니까?"하고 여쭈자,

수위 아저씨는 " 이쪽이요." 하시며 손을 가리키니 바로 교문에서 정면으로 보인다.

눈이 있어도 주님의 집을 알아보지 못한 내 자신을 나무라며 성당으로 향한다.

예수님께서 두팔을 크게 벌리시며  "어서오너라." 하신다.

환영해 주시는 예수님!

 

경사지에 세워진 성당의 전면과 측면 (2층에서 1층으로 변화된다.)

 

성당의 후면 . 우측에 성당 주출입구가 보인다.

 

 성당의 또 다른 측면과 주출입구(성당에 들어 가려고 문이란 문은 다 열어 보았다)

금방이라도 울려 퍼질 것같은  성당의 종

 

성당안으로 들어갔다. 제대를 향하여 예를 갖추고 기도를 드린다.

성당에서 비치한 안내서의 기도문을 읽는다.

 

사랑이 많으신 예수님,

예수님의 마음을 본받아 세워지고

김대건 신부님의 얼이 서린 이 곳

예수성심 성당에서 당신께 기도드립니다.

이곳을 찾는 모든 이들,

특히 미래를 짊어질 젊은이들에게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을 더 키워주시고,

이웃과 세상을 위해

빛돠 소금이 되고자 하는

결심을 굳게 하여 주소서.

김대건 신부님의 전구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성당의 내부

 

 

제대와 감실 

 

 류대철 성인의 순교 장면과 김대건 신부의 초상화

 제대 쪽에서 바라본 성당 뒷쪽

 

다른 각도로 본 제대와 감실 

성당 뒤에서 바라보시는 성모님 

 

성당 내부 입구의 문위에 있는 성당의  문장

 

 

용산신학교 개교일인 1887년 6월 9일을 의미 

  

서울교구와 대구교구가 분할된 1911년 4월 14일 의미

 

 

이 세모꼴 안의 별은 "바다의 별"로 김대건 신부님이 사제 서품을 받고 귀국하는 도중

 

풍랑을 만나 고생하다가 성모상을 꺼내어 바다가 잠잠해졌다는 의미를 새긴 것이라 함.

 

잠시 묵상을 한 후 나와 주변을 둘러 본다.

성심 여자중,고. 성심수녀원이 함께 자리 한 이곳은 주일이라 조용하기만 하다.

너무 조용해서 나의 발 걸음 또한 신중해 진다.

 

 

옛 용산 신학교 성당의 성모님과 십자가의 길 초입

 

주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저를 이 곳까지 인도하신 사랑의 주님!

감사 드립니다.

이제 주님과 함께 새남터 순교성지를 향하여 가려 합니다.

또다시 모든 것을 주님께 의지하며 가렵니다.

저에 눈과 마음을 다른 것에 두지 않게 하시어

순교성지인 새남터를 찾아가는 동안

어려움 없이 가게하여 주소서.

 

어느새 나는 성심여 중,고의 교문을 지나 한강 철교를 향하여 한 걸음, 한걸음 가고 있었다.

(새남터와 절두산순교 성지 도보 순례기는  다음편에)